[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햇마늘 산지 시세에 대해 마늘 생산자들이 의문을 던지고 있다. 올해 생산량이 가격이 좋았던 2022년 수준보다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산지 가격은 시세 상승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어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수급여건을 반영한 적정 산지 가격이 형성돼야 한다는 생산자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생산량 29만톤 하회 추산
가격 좋았던 2022년 수준 불구
kg당 가격 1000원 이상 낮아
‘의도적 가격 누르기’ 의문도
▲“산지 생산량 감소에도 시세 부진 의문”=18일 창녕농협공판장에 따르면 건마늘 출하 상황은 이달 1일 초매식 이후 한 주간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8일부터 물량이 증가하면서 출하 흐름이 활발해지고 있다. 7월 중순 창녕 일대의 출하 진행률은 대략 50~60%로 파악되고 있으며, 7월 말~8월 초쯤 출하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산지 경매가격(대서 1㎏ 상품)이다. 7월 중순 시세 흐름은 이달 초보다는 소폭 오른 4000원(3950~4050원) 정도에서 거래되는 분위기다. 손희식 창녕농협공판장 팀장은 “가격대는 7월 초보다 조금 괜찮아져 4000원 초반을 형성하고 있다. 18일 4080원에 거래된 상황으로, 앞으로도 4000원 초반 시세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예상했다.
농가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시세라는 반응이다. 올해 마늘 생산량이 29만톤에 못 미칠 것(한국농촌경제연구원 28만5000톤, 통계청 28만4900톤 발표)으로 파악돼 지난해(31만톤) 대비 9~10% 감소하고 평년 대비 13% 감소하는 것은 물론 2022년(29만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부족할 것으로 점쳐지는데, 시세는 2022년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2022년은 겨울철 냉해와 생육기 가뭄 영향으로 단수가 크게 감소해 산지공판장 시세가 5000원대를 형성하는 등 이례적으로 시황이 좋았다.
마늘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2022년도와 2024년 생산량은 29만톤 정도로 비슷한데, 산지 가격은 1000원 넘게 차이가 난다. 소비 부진을 감안하더라도, 산지 시세가 실제 수급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라며 “2022년 시세 정도로 올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올해 수급 상황이라면 적어도 생산비 수준인 4500원까지는 상승 여력이 충분한데, 의도적으로 산지 가격을 누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깐마늘 시세도 마찬가지. 산지에서 출하된 마늘은 산지공판장 중도매인이 구매해 깐마늘 가공업체에 유통·판매하고, 이 업체들이 가공 이후 깐마늘을 대형 도매시장(가락시장) 중도매인 등에 판매하는 구조여서 깐마늘 시세가 산지 시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깐마늘 시세가 좋으면, 원물 구매·저장 의향이 높아지는 등 가격 연동성이 크다. 하지만 올해는 깐마늘 시세도 부진한 상황이다. 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7월 중순 깐마늘 중도매인 판매가격은 6700~6800원 정도로, 생산자들은 8300원까지 올랐던 2022년 상황과 비교하고 있다.
전국마늘생산자협회는 16일 성명을 내고 “일주일 내에 산지 가격과 깐마늘의 가격이 현재보다 500~600원 상승한다고 해도 정부의 수급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른 안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이상기후로 인해 생산량이 줄어든 올해 수급 상황을 감안할 때 합리적인 가격 조정 수준”이라며 “산지 공판 가격을 지속적으로 낮추려는 시도는 수확기 생산자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적정한 산지 가격 형성을 촉구했다.
TRQ로 유통상인 손해 구매력 하락
깐마늘도 업체 난립으로 ‘저가 경쟁’
‘가격 오르면 수입, 하락 땐 모르쇠’
정부 무리한 시장개입 책임론 대두
▲“수입 중심의 물가관리 정책에 불신감 팽배”=그렇다면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생산자, 산지 관계자, 깐마늘 가공업체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정부 책임론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다.
표면적으로는 산지 중도매인·수집상, 저장·가공업체의 구매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 꼽힌다. 권혁정 마늘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산지 공판장 중도매인·수집상들은 단경기에 마늘 가격이 올라갈 때 정부가 TRQ(저율관세할당) 물량을 도입해 큰 손해를 경험했던 2022년 상황을 이유로 들며, 이를 핑계 삼아 산지 마늘을 높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생산면적 자율 감축과 단수 감소로 농가 수익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적정 시세가 반영되지 못하면 지난해에 이은 경영 악화가 심해져 생산 기반이 크게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깐마늘 가공업체도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최진욱 한국마늘가공협회 회장은 “깐마늘 시세가 사실상 지난해 수준인 것은 맞지만, 의도적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 역시 2022년 TRQ 수입으로 큰 손해를 입었고, 경영 악화가 심해지면서 지난해부터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소비지에서 이 요구를 받아주지 않고 있다. 소비가 안 되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그는 또 “불과 2~3년 사이에 깐마늘 신생 가공업체의 난립이 심해졌다. 그러다보니 산지 생산량이 감소한다고 해도 깐마늘 공급업체가 많아진 탓에 시장 공급량이 늘고 저가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산지는 산지대로, 업체는 업체대로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이라면서 “마늘가공업체가 전국 200여 곳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협회 회원사는 61개 업체다. 일부 업체의 노력으론 한계가 있다. 정부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협회 회원사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통해 대정부 건의 방안을 검토할 생각”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생산자들도 정부가 물가관리 차원의 수입 정책을 통해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등의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고 보고 있다.
권혁정 사무총장은 “산지 수급 상황에 따라 시세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농식품부가 만든 수급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시장 내 팽배하다는 데 있다. 가격이 낮을 때는 규정대로 한다고 하고,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수입을 진행해 왔기 때문”이라면서 “올해 햇마늘 출하를 앞둔 상황도 마찬가지다. 5월 말 열린 중앙주산지협의회에서 참석한 농식품부 담당 과장이 수급가이드라인 상 ‘상승단계’ 경계 이상(산지공판장 가격 5309원)으로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TRQ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지만, 공식 발표를 하지 않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시세 상승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산지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수입을 안 한다고 해도, 기재부 말 한마디면 순식간에 뒤집혀 버리니까 현장에서는 ‘농식품부 말은 못 믿는다’는 인식이 많다”며 “가격이 오를 때는 무리한 시장 개입으로 ‘똥값’을 만들어놓고, 풍작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꼼짝 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원예산업과 관계자는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만나서 형성되기 때문에 정부가 적정 가격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 부분이다. 다만 생산자들은 산지 가격이 낮다고 하시는데, 지난해와 올해 산지 시세를 비교해보면 7월 1일 초매식 가격은 상품 기준 3711원으로 전년 대비 22.8% 높고, 평년보다는 5.2% 높다. 초매식 이후 가격이 상승해 최근에는 4000원을 넘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2022년 수급 상황을 비교해 보면, 올해 시세는 당시보다 외식 경기가 좋지 않아 수요가 감소하고 전년 재고 보유량도 있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인 측면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다만 생산자들이 요구한 대로 생산량 감소에 따라 단경기 가격 급등에 대비하기 위해 마늘 5000톤 수매를 계획 중으로, 7월 말부터 단계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생산자 사이에서는 복잡한 유통 단계를 축소하거나 마늘 상장경매를 통해 기준가격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가락시장에서 마늘(깐마늘)은 상장예외 품목으로 대부분 비상장거래로 이뤄진다. 비중은 대략적으로 비상장거래 80%, 상장거래 20% 수준으로 나타난다.
생산자조직 관계자는 “마늘은 산지 피마늘 시장과 깐마늘 시장 등 두 개의 시장이 존재하고 있다. 깐마늘의 경우 가락시장에서 비상장거래 품목이기 때문에 가격 공신력이 떨어지는 등 불투명한 구조를 갖고 있고, 이 체계가 고착화된 측면이 있다. 이를 개선하고자 2021년 관련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후속 논의가 잘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가락시장 상장거래를 통한 기준가격을 마련하는 부분이 필요한데, 경매 가격 역시 진폭이 큰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복잡한 유통 단계와 불투명한 가격 결정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세 전망 엇갈려...상승기대 속 소비 '변수'
중국산 수입 증가로 국내산 수요 잠식도
이런 가운데 향후 마늘 시세에 대한 업계 전망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7월 말~8월 초 되면 깐마늘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산지 출하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이어서 산지 시세에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농협경제지주 관계자도 “마늘가공협회 쪽에서 깐마늘 가격을 올려달라고 해도, 깐마늘을 구입하는 가락시장과 같은 도매시장 마늘 중도매인의 협상력이 더 크기 때문에 아직은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 현재 깐마늘 시세가 6000원 중후반대인데, 500원 이상 오른 7500원까지는 상승 여력이 있다고 보인다. 시차를 두고 7월 말~8월 초 정도면 가격이 조금씩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봤다.
반면 전국 깐마늘 거래량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가락시장에서 마늘(깐마늘)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는 중도매인은 “소비가 너무 안 되는 상황이다. 올해는 전년 매출 대비 60~70% 수준밖에 안 나오고 있다”면서 “덥고 습한 날씨로 마늘 취급이 쉽지 않고 소비도 부진한 시기인 만큼 여름이 끝나봐야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소비 부진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인 마늘 소비량이 감소 추세에 있는 점도 있지만, 더 문제는 지속적인 수입 증가로 중국산 마늘에 대한 고정 수요가 생겨나면서 기존 국내산 마늘 수요를 중국산 마늘이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국산 마늘 소비가 줄고 있다는 얘기로, TRQ 수입 여파가 미치고 있는 것이다.
‘농업전망2024’ 자료에 실린 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의 소비자 패널 조사에 따르면 국내산과 중국산 마늘 구매 의향은 2018년 국내산 60.2%, 중국산 39.8%로 20%P 차이가 있었는데, 2023년 국내산 52.8%, 중국산 47.2%로 격차가 크게 줄었다. 중국산 구매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 도매시장 관계자는 “전반적인 소비 감소는 다른 품목에도 해당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TRQ 등 수입 증가로 인해 식자재 업체 등에서 중국산 마늘 수요가 많아져 국내산 마늘 수요를 대체하고 있어 국내산 마늘 소비에 악재로 작용하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