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의 배추밭. 밭 중간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
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의 한 배추밭. 이달 하순 출하를 앞두고 짙푸른 배추로 가득해야 할 밭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 빈 곳엔 고온에 물러 썩어버린 배추가 잎을 축 늘어뜨린 채 퍼져 있다.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강원지역 고랭지배추 생산기반이 소멸될 처지에 놓였다. 재배면적이 매해 큰폭으로 줄면서 생산량 또한 격감하고 있다. 국민 필수 채소인 배추 수급안정을 위한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강원지역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1996년(1만793㏊) 최고치를 찍은 후 연평균 2.9%씩 감소했다. 지난해 재배면적은 5242㏊로 1996년과 견줘 51.4%나 줄었다.
1996년 34만8000t이던 고랭지배추 생산량은 2000년(38만5000t) 고점을 기록한 이후 매해 2.3%씩 줄었다. 지난해 생산량은 22만1000t으로 1996년 대비 36.5% 적다.
현장에서 만난 김시갑 강원고랭지무배추공동출하연합회장은 “연작피해로 지력이 약해져 배추 단수(10a당 생산량)가 해마다 하락하고 있다”며 “지력을 되살리려면 휴경이 필요한데 대체 경작지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농가들은 유기질비료와 미생물 액비 등을 활용해 토질을 개량하는 한편, 배추 재배가 가능한 다른 경작지를 물색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하지만 개별 농가의 노력만으론 배추 생산기반 붕괴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얘기다.
9일 대아청과 등이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평창홀에서 ‘고랭지채소 감소 원인과 대안 마련을 위한 현장 토론회’를 개최한 배경이다. 행사는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가 주관하고 농림축산식품부·호반그룹이 후원했다.
원재희 강원도농업기술원 원예연구과장은 ‘강원 고랭지채소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고랭지배추 생산감소 원인으로 기후변화, 생산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김치 수입 증가 등 3가지를 꼽았다.
그는 “이상기후가 심화하면서 고랭지 평균기온은 오르고 강수량은 늘어난 데 반해 일조시수(햇볕 쬐는 시간)는 감소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1990년대 대관령면의 평균 최고기온은 11.3℃였지만 2000년대엔 12.4℃, 2010년대에는 12.8℃, 최근 5년(2019∼2023년)엔 13.5℃로 상승했다. 고랭지배추는 대표적인 저온성 채소로 기온이 상승하면 병해충의 직격탄을 맞는다.
생산비 상승에 따른 농가 수익성 악화도 재배 의욕을 꺾는 요인이다.
원 과장은 “2022년 고랭지배추농가 경영비는 2002년에 비해 2.8배 증가했지만 소득은 1.1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대로라면 2090년대에는 남한에서 여름배추 재배 가능지가 아예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원 과장은 고랭지배추 생산량 감소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토양의 지속가능력 복원을 위한 연구·개발▲병해충 방제기술 고도화 ▲이상기후 대응기술 개발 ▲내서성·내병성 강한 신품종 육성·보급 등을 꼽았다.
이런 가운데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8일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지역을 찾아 “현재 하루 250t 수준인 비축 배추 방출량을 필요하면 최대 400t까지 확대해 이달 중순 이후 수급불안 우려를 해소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