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평창·태백 고랭지배추 산지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우정수 기자] 

국내 대표적인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강릉 안반데기의 배추밭 모습. 대부분 추석을 앞두고 8월 20일 이후부터 출하를 본격화하는 안반데기의 고랭지배추 작황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강릉 안반데기의 배추밭 전경. 대부분 추석을 앞두고 8월 20일 이후부터 출하를 본격화하는 안반데기의 고랭지배추 작황은 비교적 양호한 모습이었다.

8월 들어 강원도 태백·평창을 중심으로 고랭지배추 출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이 전년 대비 6% 감소할 것이라는 정부 관측과 달리 8월 중하순 출하를 앞둔 산지 상황은 재배면적 감소세가 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상당했다. 지난 8~9일 강원도 평창, 강릉 안반데기 등 고랭지배추 주산지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반복되는 연작 피해와 심화되는 이상기후 속에 경영비 상승, 생산량 감소로 수익 악화가 누적되면서 고랭지배추 생산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을 울렸다. 그러면서 이제는 정부가 가격관리(물가) 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농가 소득 보전 등 생산기반 유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폭염에 가뭄, 병충해로 몸살”

연작피해 확산 뾰족한 대책 없어
매봉산 재배면적 1/5로 줄 듯

▲전반적인 작황 양호, ‘대규모 주산지’ 재배면적 감소=전국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의 90% 이상이 강원도에 몰려 있다. 강릉시 왕산면(안반데기), 태백(매봉산, 귀네미), 삼척(하장면), 평창(대관령, 진부), 정선(임계, 남면) 등 크게 5곳으로, 8월 초순부터 태백(매봉산)과 평창 일대 물량이 출하되고 있다. 안반데기는 8월 20일 이후 출하가 예정돼 있다. 대부분 고랭지배추 출하 시점을 추석(9월 17일) 전으로 잡고 있어, 올해 고랭지배추 출하 흐름은 8월 하순부터 9월 초에 가장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지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작황 편차가 심한 태백 일대 외에 8월 하순 출하를 준비하고 있는 대관령, 안반데기의 배추 작황은 양호한 편이다. 다만 폭염이 지속되고 날이 가물어 일부 포전의 경우 관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으로, 가뭄 등의 기상 변수가 향후 생산량에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여름배추 재배면적이 전년 대비 6%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는데, 8월 중하순과 9월 초까지 출하되는 고랭지배추 물량은 이보다 감소폭이 클 가능성이 있다. 대규모 생산단지인 태백과 안반데기의 고랭지배추 면적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주산지인 태백 매봉산 지역은 해발 1100m에서 1300m에 조성된 고랭지배추 생산단지가 148만5000㎡(약 45만평)에 달하지만, 지속되는 연작 피해에 따른 병충해·바이러스 확산으로 올해는 재배면적이 5분의 1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산지에선 보고 있다. 연작 피해 여파로 토양이 사막화되면서 배추를 심고 싶어도 심을 수 없는 휴경지가 늘었고, 그나마 포전에 재배 중인 배추마저도 ‘반쪽시들음병’, ‘사탕무씨스트선충’, 바이러스 등 고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로 감모율이 커지면서 생산량 급감이 현실화되고 있다.

9일 만난 이한진 태백농협 농산물유통가공사업소 소장은 “올여름 태백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고온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기온이 32도인데, 태백 낮 기온도 똑같이 32도를 기록해 저온성 작물인 배추가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며 “매봉산은 고온이 지속되면서 잎이 타들어가는 피해 등이 많았다. 언론 등을 통해 망가진 물량이 많다고 알려졌는데, 포전 피해를 최소화한 물량도 있어 작황 편차가 크다고 보면 된다. 연작 피해로 배추 대신 쌈배추 등 품목 전환을 한 경우가 늘어나 배추 재배면적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태백의 또 다른 주산지인 귀네미 지역 재배면적도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한진 소장은 “한창일 때는 귀네미의 배추 재배면적이 35만평(115만5000㎡)에 달했는데, 올해는 10만평(33만㎡)도 안 된다. 씨스트선충, 바이러스 피해 확산으로 배추를 심지 못하는 곳이 늘었기 때문”이라면서 “태백의 고랭지배추 생산기반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8월 하순 출하를 앞둔 강릉 안반데기도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안반데기 일대는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이 165만㎡(약 50만평) 내외로, 국내 최대 고랭지배추 주산지다. 9일 안반데기에서 김규현 강릉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차장은 “안반데기 등지의 배추 재배면적은 전년 대비 9% 정도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고질적인 병충해 피해로 배추를 심어도 망가져 출하하지 못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된 농가들이 배추 대신 채소가격안정제 대상 품목(배추, 무, 마늘, 양파, 대파, 고추, 감자)을 심는 비율이 늘었다. 관내에는 쌈배추·감자·양배추·당근 등이, 평창 쪽은 감자와 대파가 증가했다”라고 전했다.
 

“고랭지배추 명맥 끊길라”

생산성 하락에 수익 악화 심각
어두운 전망에 산지 불안 팽배 

▲궁지에 몰린 고랭지 생산여건, 각종 생산 통계 ‘빨간불’=산지에선 고랭지 생산여건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고 토로한다. 연작 피해가 곳곳에 확산됐지만 뾰족한 대책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 급격한 이상기후와 같은 불확실성이 커지며 생산성 하락, 경영비 증가, 수익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생산기반 약화로 이어져 머지않아 고랭지배추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 속에 산지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위기 상황은 각종 생산 관련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해발 600m 이상 강원도 고랭지배추 재배면적(2012년 4794ha→2022년 4069ha)은 15%, 고랭지무(2012년 2454ha→2022년 2276ha)는 7% 감소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에선 “2090년대 남한에서 여름배추 총 재배가능지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산지에선 태백 지역의 고랭지배추 재배면적 감소가 불러올 파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전까지 8월 고랭지배추 출하 흐름은 태백 매봉산·귀네미 물량 출하 이후 그 바통을 강릉 안반데기가 받으며 물량이 이어지는 모습이었는데, 앞으로 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산지 관계자들의 얘기다. 태백 출하 시점이 바뀌면서 안반데기 물량 출하 전까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물량 공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하작업 지연 등 예기치 않은 돌발 변수와 맞물린다면 도매시세 등에 단기간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연작에 의한 병해충 피해도 확산 중이다. 강원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7월 31일 기준 올해 강릉·태백·삼척 등 10개 시군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3.9㏊ 규모에서 병해충이 발생했다. 전년(103.1㏊) 대비 39.6% 증가한 규모다. 무름병이 68.2㏊, 바이러스가 25.1㏊, 시들음병이 17.6㏊, 뿌리혹병은 10.3㏊다. 이한진 소장은 “2011년 태백에서 처음 발견된 씨스트선충의 경우 방제 노력에도 박멸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반쪽시들음병’도 등록 약제가 없고 방제가 어려운 토양병 특성 때문에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력 강화를 위해 다른 작물을 돌려짓는 방안이 추천되는데, 배추보다 소득이 낮아 산지에서 기피하는 탓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가 수익에도 ‘빨간불’이 켜진 지 한참이다. 농촌진흥청 ‘2022 농산물 소득자료집’에 따르면 고랭지배추의 소득률은 44.6%로, 노지채소 대부분 품목들의 소득률이 50%대를 보이는 것에 비해 뒤처진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수량이 받쳐주지 못해 수입이 감소하는 경우가 많고, 고랭지 재배 특성상 경영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하락하는 상황이다. 강원도농업기술원 분석에 따르면 2002년~2022년 20년 동안 고랭지 농가 경영비가 2.8배 오르는 동안 소득은 1.1배 증가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안반데기 일대 배추 포전을 함께 둘러본 최선동 강릉고랭지채소공동출하협의회장은 “산지유통인과 계약할 때는 망가진 배추 물량에 대해서도 경영비 정도는 보전을 해준다. 정부 정책 중에서 채소가격안정제가 그나마 잘 만들어졌다고 보는데, 출하가 이뤄져야 지원이 가능한 부분은 보완돼야 한다”면서 “망가져서 출하를 하지 못하는, 미출하 분에 대해 최소 경영비 정도라도 보장해준다면 수익성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랭지배추 농사짓지 말란 건가”

생산기반 유지가 최우선 과제
정부 봄배추 비축 확대에 실망

▲가격관리 위주 정책 아닌 생산기반 유지 대책 시급=고랭지 산지 관계자들은 가격관리, 수급 위주의 정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시갑 강원고랭지무배추공동출하협의회장은 “정부가 여름배추 수급 및 가격관리를 위해 비축기지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봄배추 비축을 늘려 여름철 배추 수급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인데, 고랭지배추 농사를 짓지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며 “봄배추 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 더 큰 위험이 올 수 있는데, 무너지고 있는 고랭지 생산기반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야지 엉뚱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동 회장은 “고랭지배추가 부족해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비축물량을 방출하는 등 난리를 치는 반면, 가격이 떨어질 때 농가 소득 보전 대책은 전무하다. 가격이 높은 상황이 아닌데도 매뉴얼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방출을 하는 점도 문제다. 고랭지 농가들의 수익은 어디서 보장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면서 “토지 임차료 부담이 증가하고 있고, 인건비, 약제비용도 계속 늘고 있어 경영비 증가분을 보전해주거나 채소가격안정제 물량을 확대해 소득 보전을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한진 소장은 “배추를 심고 싶어도 재배면적은 줄고, 배추를 심어도 제대로 생산되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물가안정 명목의 정책이 아니라 이제는 농가들이 생산을 포기하지 않고 재배면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산기반 지원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라며 “지력 회복을 위해 휴경이나 윤작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8~9월 배추 시세, 전년 대비 상승 전망=어두운 고랭지배추 재배 여건과는 다르게 배추 시세는 전년과 평년 대비 높게 형성되고 있는 분위기다.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기준, 8월 5일 이후부터는 배추 평균 도매가격(10kg, 상품)이 1만6000원대에서 1만9000원대를 오가고 있다. 정부가 비축했던 배추를 시장에 꾸준하게 방출하고 있지만, 예상됐던 8월 중순~말 사이 고랭지배추 산지의 공급량 감소 영향이 크다. 8월 20일 이후 고랭지배추 산지에서 출하를 시작하더라도 추석 성수기인 9월 중순까지는 높은 가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행서 대아청과 부장은 “지금은 시기적으로 산지 수확량이 없는 상황이고, 시장 반입 물량도 저장배추 위주로 들어온다”라며 “8월 말부터 출하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모든 농산물 소비가 풍성하게 이뤄지는 추석 단대목까지는 시세가 높게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는 특히 추석 이후에도 예년에 비해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추석이 9월 말이었던 지난해의 경우 9월 평균 도매가격은 1만3086원이었고, 추석을 지난 10월에는 평균 가격이 1만841원까지 낮아졌다. 보통 추석을 기점으로 배추 수요가 줄면서 도매시세가 꺾이기 때문인데, 산지에선 올해는 급격한 하락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강릉 안반데기에서 만난 한 산지유통인은 “최근 배추 좀 보내달라는 김치공장 전화가 잦아졌는데, 김치공장들이 저장한 배추를 많이 소진했다는 뜻”이라며 “그러면 이달 말부터 산지 공급량이 많아지더라도 김치공장 수요가 시세를 어느 정도 받쳐 줄 가능성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올해는 평년보다 유독 여유롭지 않은 국내 채소류 전반의 수급사정이 배추시세를 지지해 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선 임계면을 중심으로 강원도 내 여러 산지에서 고랭지배추를 재배 중인 한 농가는 “추석을 앞둔 시점부터 산지 출하량이 몰리게 되면 보통 추석 대목 이후에는 배추시세가 급격하게 꺾이는 양상을 보이는데, 올해는 하락 폭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다”라며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다른 채소류 작황이나 공급이 정상적이지 않은 게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고성진·우정수 기자 kosj@agrinet.co.kr

출처: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