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54년 넘게 농사를 짓다가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나라에서 매월 146만원을 주는데, 복권에 당첨된 것 같습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서 농사를 짓는 77세 고령농 박윤군 씨의 말처럼 올해 도입된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8월 20일 기준 사업접수 실적이 1300건, 859ha이고, 계약실적은 978건, 602ha에 달한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을 신청한 농가를 만나봤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이란?

만65~84세 농업인 대상
10년간 매월 일정액 지급
0.3ha 이하 경작은 허용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은 고령농업인들의 은퇴를 유도하는 대신 소득안정을 지원해 청년농 등을 중심으로 농지를 이양하고, 세대전환을 촉진하는 사업이다. 올해부터 시작돼 5년간 한시적으로 추진되는데, 5년 후 사업성과를 분석해 지속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고령은퇴농들이 농지를 농지은행에 매도하거나 매도를 조건으로 임대하는 경우 정부가 매월 일정금액을 가입 시 연령에 따라 최대 10년간 지급하는 것이다. 매도의 경우 농지를 매도한 금액에 더해 1ha당 월 50만원(연간 600만원)을 지급한다. 또, 매도조건부임대는 농지연금(매월 최대 300만원), 농지임대료, 농지매도대금(농지연금 채무액 제외)에 더해 ha당 월 40만원(연간 480만원)을 지급한다.

영농경력 10년 이상인 만65세에서 만84세 이하인 농업인이 대상이며, 대상농지의 경우 농업진흥지역 내는 농지이양 이전 3년 이상 계속 소유한 논, 밭, 과수원이다. 농업진흥지역 밖은 경지정리사업을 마쳤거나 간척농지를 매입해 3년 이상 소유 및 경작한 논, 밭, 과수원이며, 지급상한은 매도 및 임대를 합산해 4ha까지다. 또, 농지이양 은퇴직불금 지급대상 농지가 아닌 0.3ha 이하의 농지 소유 및 경작은 허용해준다.

 ●농지 매도 - 경주 벼·과수농가 박윤군 씨
“노후걱정 덜면서 은퇴감사할 따름”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김병현 팀장(좌)과 촤라원 대리(우)가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에 참여한 박윤군·이주덕 부부를 방문했다.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김병현 팀장(좌)과 촤라원 대리(우)가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에 참여한 박윤군·이주덕 부부를 방문했다.

농지 매각대금 받고 연금도 수령 
“건강만 생각하라”며 가족도 응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서 벼와 과수농사를 짓던 박윤군(만77세) 씨는 올해 초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에서 배포한 책자를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에 대한 소개를 봤는데, 농지가격도 수령하고, 은퇴직불금도 수령할 수 있어 노후생활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 “농지 규모가 큰 편이라서 민간 간에는 거래가 힘들었는데, 농지매입 외에 매월 직불금도 준다는 홍보물을 본 후 경주지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는 그는 “대기 순번을 받고, 혹시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까 초초하게 기다렸다”고 회상한다.

그는 3남1녀의 자녀를 뒀는데, 서울과 포항 등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자식들도 농지매도를 지지해줬단다. 박윤군 씨는 “군대를 다녀와서부터 54년 넘게 농사를 지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어김없이 새벽 4시부터 들에 나가 일을 했다”면서 “이런 모습을 봐와서 그런지는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 건강만 생각하라면서 좋아해주더라”고 말한다.

박윤군 씨는 지난 4월 30일 계약을 맺고 2.9ha를 농지은행에 매도했다. 약정기간은 만84세까지 8년인데, 월 146만원, 총1억4090만원을 수령할 예정이다. 논을 매각한 대금 약10억원은 별도로 수령했고, 자택 주변의 자투리농지 0.2ha를 소일거리로 경작한다. 농지의 일부만 매도할까 생각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1년을 늦추면 은퇴직불금 수령기간이 7년으로 줄어든다는 판단에 대부분의 농지를 매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윤근 씨는 “올 5월 15일 은퇴직불금 146만원을 처음 수령했는데, 내가 은퇴할 시점에 이런 제도가 생겨나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들었다”면서 “복권은 내가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은퇴직불금은 정부가 보장해주는 것이니까 더 좋은 것 아니냐”며 만족해한다. 다만, 농지의 매도로 농업경영체 자격이 상실될 경우 건강보험을 비롯한 정책적인 혜택의 축소, 조합원 자격의 상실 등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이에 김병현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농지은행관리부 팀장은 “올해 처음 도입된 사업이라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사업 평가를 통해 미비점을 보완해갈 것”이라고 설명한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으로 매도한 농지는 농지은행을 거쳐 청년창업농들에게 공급된다. 김병현 팀장은 “박윤군 농가가 매도한 농지는 입지가 좋기 때문에 벌써 임대가 됐다”면서 “일부는 청년창업농들이 콩을 심어놓았고, 일부는 정부가 지원하는 임대형 스마트팜을 조성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북 남동부 최대 쌀 주산지인 ‘안강뜰’에서는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을 통해 농업경영의 세대전환이 촉진되고 있었다.

서상현 기자 seosh@agrinet.co.kr


● 매도조건부임대 - 정읍 벼농가 김재현 씨
“소일거리나 하며 편하게 노후 보낼터”

김정민 한국농어촌공사 정읍지사 농지은행관리부장(사진 왼쪽)과 김재현 씨가 정읍지사에서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의 장점을 비롯해 향후 개선사항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민 한국농어촌공사 정읍지사 농지은행관리부장(사진 왼쪽)과 김재현 씨가 정읍지사에서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의 장점을 비롯해 향후 개선사항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10년 후 매도 조건 농지연금 가입
농지가격 상승 땐 차액 추가 지급

김재현 씨(만65세)는 전북 정읍시 소성면에서 30여 년간 벼농사를 지었다. 군 제대하고 10년간 아버지와 함께 벼를 재배하다 힘이 들어 잠시 손을 놨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20년 이상 농업인으로 살았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농사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1ha 남짓의 소농이다 보니 수익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80㎏ 네 가마를 생산하면, 이 중 두 가마 정도가 순수익이다. 게다가, 아들이 대를 잇기 위해 귀농을 할 가능성도 없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김재현 씨는 한국농어촌공사 정읍지사가 배포한 ‘농지이양 은퇴직불’ 홍보 전단을 보게 됐다. 그는 전단을 보자마자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자신보단 청년들이 농사의 꿈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도 한몫했다.

김재현 씨는 “농촌에선 65세가 청년이라곤 하지만 30년 넘게 농사를 짓다보니 몸이 힘들다는 것을 느낀다”며 “자식들도 다 키워서 이젠 돈 들어갈 곳도 없어 농사를 이젠 쉬고 편하게 아내와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히나 농지가 크진 않아도 청년들이 농촌에 들어와서 정읍에서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니,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 참여를 곧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재현 씨가 가입한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 종류는 ‘매도조건부임대’다. 농지를 10년 후 공사에 매도하는 조건으로 농지연금에 가입하는 상품이다. 김재현 씨의 농지면적은 1ha가 안 되는 9012㎡. 앞으로 10년간 은퇴직불금 월 36만원에 농지연금 244만원을 더해 약280만원 가량을 수령하며, 10년 후엔 농지를 매도한다. 이 때 농지가격 상승 시엔 농지연금 수령액 차액분을 추가로 지급한다. 김재현 씨는 농지임대차료 3400만원도 일시불로 받았다.

김재현 씨는 “부부 둘이서 살기엔 부족하다면 부족할 수 있어도 소일거리하면서, 무엇보다 농사 걱정 없이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미소를 보였다.

김재현 씨는 주변 지인을 만날 때마다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을 홍보하고 있다. 은퇴를 고민하는 자신과 같은 농업인에겐 이점이 많은 사업이란 생각에서다. 그런 그가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김 씨는 “은퇴직불사업 가입 후 농협 조합원 자격이 박탈됐고, 그로부터 한동안 허탈감이 컸다”며 “주변에 이 사업이 좋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조합원 자격이 없어진다고 하니 난색을 보이더라”고 전했다. 의료보험료 부담이 커진 점도 애로사항 중 하나다.

김정민 한국농어촌공사 정읍지사 농지은행관리부장은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은 은퇴농에겐 어느 정도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주고, 청년농은 이런 은퇴농의 농지를 활용해 농사를 짓고 그 규모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장점이 있다”며 “현장의 농업인들이 사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구석구석 홍보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출처: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6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