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고성진 기자]
“배추·무 좀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어요. 그냥 두면 저절로 시세가 잡힐 텐데 언론에서 떠들고, 정부가 이상하게 나서는 바람에 결국 소비 부진에 가격은 떨어져서 소비자, 농가 모두 피해를 보게 됩니다.”
배추·무 등 김장 채소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 올해 김장을 포기한다는 ‘김포족’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유독 심한데, 김장에 사용할 가을배추·무가 다 자라기도 전부터 김장 채소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정부가 본격적인 김장철을 맞으면 김장재료 출하지역과 공급량이 늘어나 현재 22만1794원 수준인 김장 비용도 조만간 평년 수준(22만457원)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하는데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을 견뎌내고 출하를 시작한 산지에선 이런 모습에 한숨만 나온다. 계속된 고온에 배추·무 생산량이 감소하기는 했지만 김장에 영향을 줄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산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장용 가을배추·무 산지인 전북 고창군과 부안군 일대를 찾아 현장 상황을 살폈다.
폭염·늦더위에 생육 지연
포전 관리비용 늘어 ‘농가 부담’
생산량 평년보다 소폭 감소
수급에 영향 미칠 정도는 아냐
▲고온 여파로 예년보다 출하 늦어진 가을배추 산지=13일 찾은 고창과 부안 일대에는 김장배추(가을배추) 출하가 본격화되는 분위기였다. 예년보다 출하 시기가 다소 늦어졌다. 여름철부터 계속된 고온 여파로 결구가 늦어지는 등 배추 생육에 영향을 준 탓이다.
부안 줄포면에서 출하 작업을 하고 있던 이칠성 씨는 “11월 10일부터 배추 출하를 시작했다. 예년 같으면 이 지역은 11월 초부터 출하가 시작되는데, 9월에도 날이 더워 결구가 지연되면서 출하 시기가 전반적으로 일주일 이상 늦어졌다. 지금부터 시작해 11월 말이면 대부분 출하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가을배추 산지인 부안은 대개 11월 초부터 출하를 시작해 12월이 되기 전에 마무리되는 곳으로 11월 한 달간 김장배추 출하가 집중되는데, 올해는 출하 시기가 11월 중순으로 다소 늦어지면서 수확 손길이 더 바빠졌다. 이 씨는 “출하가 늦어지니 포전 관리 비용도 늘어나 생산비 부담이 많아졌다. 게다가 이곳은 눈이 내리는 12월이 되면 출하를 할 수 없어 11월 내로 출하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출하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다 보니 출하 작업이 많이 몰렸다. 여기에 시기상으로 다른 작물 수확 시기와도 겹쳐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포전에서 수확과 함께 망 포장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파렛트 작업을 하기가 여의치 않아 1톤 화물차량에 실어 인근 대로변으로 이동해 별도 파렛트 포장을 진행해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시간과 비용은 더 들어가는 실정이었다.
부안과 고창 일대의 가을배추 생산량은 우려와 달리 평년 수준 또는 소폭 감소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게 산지 분위기다.
부안 줄포면과 보안면 등에서 지역농협과 계약재배를 한 농가들이 합심해 배추밭 4만평 출하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 이칠성 씨는 “생산량 자체는 평년 대비 소폭 감소한 상황인데, 수급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면서 “고온이 심했지만 다행히 배추가 완전히 망가진 것들이 별로 없는 편이다. 포전별 차이가 있겠지만, 만약 있더라도 2~3% 등 일부에 불과한 정도”라고 전했다.
고창 대산면에서 40년 넘도록 배추를 재배한 김사형 씨의 생각도 비슷했다. 김 씨는 “올해 약 1만평 규모의 가을배추 재배를 하는데, 출하 예정일을 11월 17~18일쯤으로 잡고 있다”면서 “올해는 평년작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이 일대 배추 작황도 전체적으로 평년 수준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생산 현장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단수 하락에 따른 감모 편차가 나타나고 있고, 망 포장 출하 작업 과정에서 버려지거나 못 쓰는 물량들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칠성 씨는 “1평당 배추 3망(10포기) 정도 나온다고 보면, 350평에서 약 1000망, 즉 5톤 차량 1대 물량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400~500평당 1대분 물량이 많고, 이보다 더 심각한 포전도 있는 등 편차가 크다. 외형적으로 크기가 들쑥날쑥한 배추가 많아 출하 과정에서 버려지는 물량들이 꽤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기후위기와 농촌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배추 시세만 갖고 문제를 삼으니 시세에 영향을 미치고, 농가 소득이 보전되지 않아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등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금배추니 수입배추니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생산량을 유지하고 농가 소득을 안정화하는 차원에서 계약재배를 더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을배추 산지 출하가 본격화되면서 김장철 직전 배추 도매시세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시세(10㎏망, 상품)는 10월 30일 8753원으로 떨어진 이후 하락세를 지속, 11월 9일 7627원, 11일 8270원, 12일 6972원, 13일 7597원, 14일 8426원을 기록하고 있다.
부안과 고창은 전북 지역에서 대표하는 가을배추 주산지다. 특히 고창의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2023년 기준 316ha로 전북 생산량의 29.8%에 달한다. 부안 역시 가을배추 산지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데, 두 지역의 상황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안이 농협 계약재배를 중심으로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고창은 산지유통인과 포전거래 비중이 늘면서 농가 직접 생산 비중이 줄어드는 추세다.
김사형 씨는 “대산면은 예전부터 가을배추를 많이 심었기 때문에 직접 재배하는 농가들이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는 산지유통인과 포전거래를 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수십 년 전에 비해 재배면적이 감소하는 추세지만, 포전거래 전환 등으로 재배면적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12월 넘어서부터 해남 배추 출하가 본격화되기 이전에 고창에서 출하되는 배추의 품질이 우수한데, 고창 배추에 대한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잘 알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고온 길었던 탓 무에 구멍 뚫려
출하량 평년보다 줄었지만
시세까지 떨어지니 ‘답답’
가격 높다지만 산지는 되레 손해
▲생산량 감소에도 시세 하락 걱정하는 가을무 산지=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올해 가을무 생산량을 37만3000톤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년 대비 15.8% 감소한 물량. 지난해보다 가을무 재배면적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그보다 가을무 파종기인 8~9월까지 계속된 고온과 가뭄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감소한 영향이 크다. 여기에 무더위 속에 전국 산지의 가을무 생육이 지연되면서 10월 넷째 주까지는 가락시장 기준, 도매시세(20kg, 상품)가 2만원대 후반에서 3만원대 초반까지의 높은 가격을 형성했다. 각종 언론에서 배추김치에 이어 이제는 깍두기도 마음대로 못 먹게 생겼다며 소비자 불안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그러나 10월 말부터 가을무 출하지역이 확대되면서 현재 도매가격이 1만800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시세가 하락 전환한 상태다.
고창군과 부안군도 10월 말부터 가을무 출하를 시작한 산지 중 한 곳으로, 지난 13일 찾아간 무 밭에선 아침부터 김장철에 맞춘 무 출하작업이 한창이었다. 벌써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 지역 토양 특성인 황토를 드러낸 밭도 상당수. 이날 만난 생산자들은 올해 작황에 대해 농경연 관측과 비슷한 목소리를 전했다. 다만 고창보다는 부안 지역 출하자들이 생산량 감소에 대한 체감도가 더 큰 모습이었다.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의 무 밭에선 만난 한 산지유통인은 “올해는 무 생육이 늦어져 10월 25일부터 출하를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만 보면 출하량이 평년 대비 50% 정도 줄었다”면서 “올해는 고온기가 길었던 탓에 속에 구멍이 뚫려서 버려야 하는 무가 많이 나오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더위가 극심했던 8월 20일 이전 파종한 무 상태가 좋지 않아 출하량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포리의 산지유통인은 “보통 작황이 괜찮을 때는 무 밭 350평에서 트럭 한 대분(다발무 10톤)을 수확하는데, 어제 같은 경우 3000평에서 트럭 두 대 반밖에 채우지 못했다”라며 “인근 출하작업을 봐도 보통 500평에서 트럭 한 대, 1000평에서 한 대 물량이 나오는 밭이 많다”라고 산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유통인은 무(다발무) 시세에 대해서도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산지유통인은 “언론에선 무 가격이 높다고 난리지만, 출하 초기만 그랬지 지금은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라며 “생산자 입장에선 출하량이 줄어든 것에 비하면 지금도 가격이 낮은데, 앞으로 전국 산지에서 물량이 쏟아지면 지금보다 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은 무 가격이 비싸다고 하는데 산지에서는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며 “무수확에 들어가는 작업비에 운임, 기타 비용을 계산하면 트럭 한 대(다발무 10톤) 출하했을 때 시세가 700만원이 나와도 별로 남는 게 없는데, 올해는 상품 무 물량이 많지 않아 트럭 한 대에 400만원, 500만원 밖에 나오지 않는 날이 많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11월 10일 이후 도매시장으로 출하된 다발무 가격(10톤)은 상품 평균 810만원, 중품 628만원, 하품 442만원 수준을 형성하고 있다.
고창군의 무 밭 사정은 부안보다 나아보였지만 생산량이 감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고창군에서 만난 농가는 생산량이 줄었어도 소비에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농경연에서도 평년 기준으로는 가을무 생산량이 5.5%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에서 배추와 함께 가을무 농사도 짓고 있는 김사형 씨는 “이달 초부터 가을무 출하를 시작했는데, 무더웠던 날씨 때문에 생산량이 평년 대비 감소했다”라며 “그래도 언론 등에서 이야기 나오는 것처럼 소비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단순하게 소비량만 놓고 보면 생산량이 더 줄어도 상관없다는 게 김사형 씨의 의견. 그는 “무 소비가 안 되기 때문에 생산량이 줄었어도 출하량 대비 시세가 높지 않다”라며 “고창 지역의 경우 100% 김장철에 맞춰서 무 재배를 하는 만큼 앞으로 고창 지역 출하량이 더 늘어나면 무 수급도 원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창·부안=우정수·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출처:한국농어민신문 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