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잇단 수확 포기...농작물재해보험도 '무용지물'
[한국농어민신문 강재남 기자]
콩·메밀·브로콜리·당근 등
폐작 수준의 밭에 망연자실
"수확하면 되레 손해" 한숨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턱없어
피해규모 15% 그쳐 '불만 고조'
“농약대 지원도 안되는 수준…
다시 농사짓기 힘들다” 답답
올해 여름과 가을, 제주지역의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등으로 수확기를 맞은 밭작물 피해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농가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올 여름 제주 평균기온은 26.3도로 평년보다 1.8도 높아 역대 1위를 기록해 가장 더웠다.
평균 폭염일수는 평년보다 4.3배 많은 16.5일로 역대 1위였다.
10월 평균기온 역시 평년보다 2.2도 높은 20.9도를 기록해 역대 1위를 기록했으며, 강수량은 평년대비 148.2% 수준인 130.2mm로 평년보다 38.6mm 더 내렸다.
특히 강수일수는 평년보다 9.2일 많은 15.5일로 역대 가장 길었다.
이달 초에는 제21호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지난 1일 기준 제주 238.4mm, 고산 138.4mm 성산 242.1mm가 내려 11월 역대 최고 일강수량을 기록했다.
여름·가을철 폭염·폭우로 수확을 해야 할 콩, 메밀, 브로콜리, 당근 등 밭작물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NH농협손해보험 제주총국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이 달 14일까지 접수된 밭작물 사고접수건수는 총 4420건으로 이 중 조수해 27건을 제외하면 4393건이다.
피해 품목은 당근, 메밀, 월동무, 콩, 브로콜리 품목이 4193건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자연재해로 접수됐다.
수확을 앞두고 있던 밭작물이 이상기후로 피해를 입으면서 농가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한편, 농작물재해보험 손해평가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일대 13만2230㎡(4만여평) 농지에서 콩을 재배하고 있는 강경현씨는 “이상기후 때문에 콩을 수확해도 팔 수 없는 쓰레기뿐”이라며 “수확을 포기하고 갈아엎는 것이 나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작물재해보험을 가입했지만, 폐작 수준의 밭을 보고도 손해사정인들이 피해율을 35% 산정해 자부담 20%를 제외한 15% 수준만 보상해 준다고 하는데 말이나 되느냐”고 한 숨을 쉬었다.
강씨는 “임대료, 인건비 등 기본 5000만원에서 6000만원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썩어 쓸 수도 없는 콩을 수확량으로 잡아 적정 보상도 못해주는 재해보험이 답답하다”며 “이 일대 콩 농가 대부분이 이런 상황에서 행정에서 농약대라도 지원하지 않으면 다시 농사짓기는 힘들”고 하소연했다.
제주시 오라동 일대 메밀 66만1150㎡(20여만평) 밭 수확을 포기한 문승환씨는 “수확을 해도 생산비도 나오지 않고, 오히려 수확비용으로 손해가 커질 것”이라며 “무리하게 수확을 하느니 모두 갈아엎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재해보험 손해사정인들의 야박한 손해율 산정이 농가를 두 번 죽인다”며 “쭉정이 수준의 메밀이 달려있다고 수확량에 포함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보상도 투자한 종자대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시 한림읍 일대에서 브로콜리 3300㎡(1000여평)와 양배추 3300㎡(1000여평)를 재배하는 이상훈씨는 “중산간 지역은 비 피해, 해안 지역은 고온 피해가 많아 이런 농사는 처음 본다”고 전했다.
이씨는 “브로콜리 구가 여러 개 생기는 기형과 병해충이 심해 수확을 포기했다”며 “비 날씨가 많아 예년에 비해 방제작업을 두 배 이상 늘렸지만, 병해충으로 양배추도 갈아엎었다”고 말했다.
이어 “예년과 올해 다른 점은 폭염이라 고온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것 같다”며 “보험도 규정에만 맞춰 피해율을 산정해 주변 농가들의 불만이 많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제주도의회와 지역농협이 이상기후에 따른 밭작물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승준(더불어민주당·한경면·추자면) 의원은 지난 15일 속개한 제433회 정례회 농수축경제위원회 제2차 회의 제주도 농축산식품국 대상 2025년 예산심사에서 이상기후에 따른 채소류 재배 농가 피해조사와 지원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브로콜리, 양배추 등 채소류가 집중호우로 무름병과 시드름병이 급격히 증가해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일부 농가에서는 수확을 포기하고 전량 갈아엎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들조차 보험사에서 현실성 없는 피해율 산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농협손해보험과 적극적인 업무 협조체계를 마련해 손해사정인 현장조사 시 피해율 산정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해야 한다”고 도에 촉구했다.
콩 주산지 지역농협을 중심으로 구성된 콩제주협의회(회장 이한열·제주안덕농협 조합장)도 긴급회의를 열고 농가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협의회는 콩 농가의 피해 경감을 위해 농작물 재해보험 피해보상 기준 현실화 및 제도개선을 담당부서에 건의하고, 재해자금 지원과 콩 재해피해 인정 및 지원방안을 농협중앙회와 제주도에 건의하기로 했다.
이한열 콩제주협의회 회장은 “제주 콩 농가의 피해가 심각해지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의 신속한 지원과 농작물재해보험 등의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제주=강재남 기자 kangjn@agrinet.co.kr
출처: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