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소비자 물가 안정 토론회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한국부인회총본부와 소비자재단이 15일 ‘기후위기 대비 농산물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한 토론회’을 열었다. 
한국부인회총본부와 소비자재단이 15일 ‘기후위기 대비 농산물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한 토론회’을 열었다. 

농식품 물가는 왜 매번 높은 것처럼 느껴질까. 우리나라만큼 농산물 가격이 비싼 나라가 없다고 하는데, 맞는 얘기일까. 값싼 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면 농식품 물가를 낮출 수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농산물 물가를 둘러싼 물음표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리가 소비자단체 주도로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한국부인회총본부와 소비자재단은 15일 ‘기후위기 대비 농산물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연구위원)이 발표한 ‘농식품 물가, 현황과 이해’에 대한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고, 이어 토론에서 나온 얘기들을 간추렸다.

농축산물 자주 구입하는 탓에
가격 오를 때 체감도 더 높지만
소비자물가지수 기여도는 낮아


▲농산물 물가는 왜 계속 오르는 것 같죠?=김상효 연구위원은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연계된 농식품 고물가 수준에 대한 평가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농산물 물가를 판단할 때는 일반적인 소비자 물가와 동일한 관점에서 비교하면 안 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장기적으로 계속 올라가는 특징이 있는데, 농산물 물가는 상황에 따라 떨어지는 등 변동성이 크다”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예를 들어 이번 주에 사과가 비싸다, 또는 대파, 배추 가격이 높으니 전반적인 농산물 물가가 비싸다는 식의 해석과 진단을 내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했다.

이어 “제조업 분야의 공산품은 가격이 올라가지만 잘 떨어지지는 않는다. 가공식품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신선식품에 대해서는 등락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런 부분 때문에 최소 몇 개월, 또는 1년 정도의 장기적인 추세를 갖고 농산물 물가를 진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농식품 물가에 대한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이유에 대해서도 “다른 상품에 비해 농축산물을 더 자주 구입하고, 가격이 떨어질 때와 가격이 오를 때 체감도의 비대칭성이 발생하는 데다 가격에 대한 정보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소비자 체감과 달리 실제 소비자물가지수에 미치는 농축수산물의 기여도는 낮은 편이며,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연구위원은 “CPI 산출 과정에서 농축수산물 가중치 비율은 7.49%다. 반면 가공식품(7.5%)과 외식(13.8%)을 합하면 20%가 넘는다”면서 “2000년대 들어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기여도는 농축수산물이 상당히 낮고 가공식품과 외식은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2000년과 2022년 두 시점을 놓고 보면 농축수산물 가중치는 10.6%→7.49%로 낮아졌고, 가공식품은 6.72%→7.5%, 외식은 10.1%→13.8%로 증가했다”고 했다.

▲우리 농산물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비싸다면서요?=우리나라와 다른 국가와의 농식품 물가 비교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김 연구위원의 의견이다. 내재적 속성, 외재적 속성, 재정·통화정책 등 물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국가별로 달라 단순 비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내재적 요인은 농산물이 갖는 자체적인 특성인데,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의 경우 품종, 크기, 품질 등 이질적인 측면이 많아 비교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예를 들어 국내에서 판매하는 ‘갤00 핸드폰’과 미국에서 판매되는 ‘갤00 핸드폰’은 대상 비교가 가능하다. 그런데 농산물은 품종, 크기, 강도, 신선도, 판매처 등 모두 이질적이다. 서울에서 사 먹는 사과와 고향에서 부모님이 드시는 사과를 비교하는, 도시 간 비교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농산물 가격(물가)에 대한 국제 비교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농산물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외재적 요인도 있다. “노동과 자본, 땅을 어떻게 결합해 생산을 해낼 것인가를 통칭 생산함수라고 하는데, 이게 나라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동일한 제품에 대한 가격이 다른 경우 생산함수가 다르기 때문으로 볼 수 있고, 또 안정적인 생산능력이 없는 나라에서는 물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 범주에는 유통 시스템, 저장 능력과 같은 유통 효율성 부분과 기후위기 등도 포함돼 있다.

정부 정책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국가별로 다르다. 김 연구위원은 “내·외재적 요인이 동일하고, 심지어 기후 환경이 똑같다고 해도 국가 간 물가 비교는 쉽지 않다. 재정·통화 정책의 이질성 때문”이라면서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치면, 상품의 내·외재적 속성이 아니라 통화 정책 때문에 물가가 올라가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농산물 물가가 높다는 기사가 나오면 정말 우리나라 물가가 높다고 이해하기가 쉬운데,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면서 “한 산업의 개별 품목 가격을 국가 간 비교를 통해 상대적으로 높다, 낮다고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고, 합리적인 비교를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가 필요하다. 앞선 요인들에 대한 비교가 쉽지 않다면, 우리나라 농식품 물가가 다른 국가보다 높다는 부분도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CPI 연평균 변화율은 전체 평균 수준이거나 최근 몇 년 간은 오히려 더 낮다. OECD 국가의 CPI 연평균 변화율은 1999~2023년 동안 3.3%, 2019~2023년 동안에는 7.6%로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각각 3.9%(1999~2023년), 5.4%(2019~2023년)로 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각국의 통계청조차도 자국 CPI에 대해 현재 진행형의 개선 과정을 겪고 있다. 특히 농산물 물가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물가를 트래킹(추적)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닌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국제기구는 각국 통계청의 자료를 받아 단순 비교하고 있는 수준”이라며 “그렇다 보면 품목별 비교까지는 어려워진다. ‘우리나라 사과가 미국 사과보다 비싸다, 싸다’ 이런 기준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통계적 리스크가 없고,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민간에서 가격 비교를 용감하게 발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입산에 의존도 높이면
국내 공급기반 무너져
식량 자급률 하락 ‘물가 상승’


▲값싼 농산물을 수입해 물가를 잡으면 되잖아요?=김상효 연구위원은 농산물 분야의 대외 의존도는 FTA(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증가해 이미 상당 부분 개방된 상황이라며, 더 이상의 농산물 추가 개방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수입 구조를 보면 전체 상품의 수입 의존도보다 농업 부문의 수입 의존도가 훨씬 더 높다. 농업 부문 무역 개방도는 OECD 평균 수준인데 수입 의존도는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감소 추세에 있기 때문에 대외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식량 무기화라는 부분을 우려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잠깐 농산물 수입을 늘려 국내 가격을 낮추면 해당 연도에 소비자 후생은 증가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 국내 공급 기반이 무너지게 되면 우리는 수입 농산물에 종속되게 되고 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수입을 확대해 물가를 낮출 수 있다’는 인식에 대해서도 “자급률과 물가 간 상관관계를 보면 자급률이 낮으면 물가가 올라가게 된다. 자급률이 낮을수록 수입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 최소한 우리나라로 이동하는 운송비 등 제반 비용이 붙게 되고 다른 나라보다 비싸지게 된다. 물가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실제로 FTA를 계속해서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계속 올라갔다. 시장 개방 확대가 가격 하락에 미치는 영향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은
“대형마트 등 소매유통채널 유통마진 적절성 따져봐야”

토론회에서는 농산물 물가 안정을 위해 유통구조의 비효율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김미애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회계사는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 분석’ 발제에서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의 재무분석을 통해 “도매시장법인의 영업이익률이 20%를 초과하는 등 과도하게 높고, 유통 이익이 농산물 유통 발전을 위한 투자보다는 배당으로 유출하고 있다”며 “유통 이익이 농산물 유통 발전을 위한 노력 및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옥경영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농산물 가격 결정에 영향을 주는 유통 채널들이 여럿 있다. 도매단계 유통비용(13.5%)보다 소매단계 비용이 26.6%로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대형마트 같은 소매 유통 채널에 대한 유통 마진이 적절한지 분석과 함께 전체 유통 채널을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농산물 비축 확대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농산물 가격은 조금만 생산량이 많아도 폭락하고, 조금만 생산량이 부족하면 폭등하는 등 비탄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저장을 늘리는 길밖에 없다”면서 “배추와 무의 경우 정부 비축과 더불어 김치가공업체가 저장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통해 저장을 확충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농산물 가격이 CPI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의 체감 인식은 굉장히 높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빈번해지고 이미 예견된 문제일 수 있는데, 이에 비해 관련 대책이나 정책은 느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계속 추진 중인 농산물 할인쿠폰 정책과 할당관세 수입도 과연 물가 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인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농산물 할인쿠폰 지원 등과 관련해, 김상효 연구위원은 “고물가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취약계층 가구를 중심으로 고물가 지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신우식 농림축산식품부 원예산업과 과장은 “고물가가 지속되고 국내 공급량이 부족해져서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국내 생산 기반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국내 자급률이 떨어져 물가에 더 취약해지는 구조가 된다”며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중장기 생산 수급 안정 방안을 수립 중이다. 정부 비축을 확대하는 한편 기상 예측을 고도화하고 농산물 유통구조 문제도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출처: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