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그리고 농어업 ① 기후변화, 이젠 상시다

[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 

올 여름 폭염일수 평년비 2.3배
강수량 중 78.5% 장마철 집중
11월 첫눈은 117년 만에 폭설

올해 여름철 전국 폭염일수는 24일로 평년보다 2.3배 많았다. 열대야 일수는 평년 대비 3.1배 많은 20.2일로 집계됐다. 각각 역대 3위와 역대 1위다. 올해 여름철 강수량 중 78.8%가 장마철에 집중됐다. 여름철 비의 50%가 장마철에 내린다는 통계와 비교하면 그 양이 꽤 많다. 이번 장마철은 ‘좁은 영역에서 강하게 내리는 비’가 잦았다. 전북 군산 어청도는 1시간 만에 146㎜가 쏟아졌다. 200년 빈도, 즉 200년에 한 번 내릴만한 비의 양이었다. 그리고 11월 27일, 11월 첫 눈이 내렸다. 이 눈이 폭설이었다. 기상 관측 사상 117년 만의 일이다. 이런 이상기후가 연중 나타나고 있다. 이젠 ‘이상’ 아닌 ‘상시’다. 이에 따라 기후민감성이 큰 농어업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농어민신문은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이하 농어업위)와 함께 ‘기후변화, 그리고 농어업’이란 주제로 3회에 걸쳐 기후변화로 인한 농어업 분야의 피해부터 향후 대책까지 알아본다.
 

과수 일소·열과 피해 크고 병해충 피해 연 5000억 달해

지난해 사과꽃이 예년보다 2주가량 먼저 폈다. 3월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4월 초 꽃샘추위로 인해 꽃눈이 떨어졌다. 그해 사과 생산량은 전년보다 30%가 줄었다. 올해는 과수의 일소·열과 피해가 컸다. 고온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집중호우가 더해지면서 특히 배와 감귤에서 일소·열과 피해가 두드러졌다. 제주의 주요 밭작물인 브로콜리와 당근 등도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로 수확량이 감소했다. 올해 고랭지 배추도 폭염과 폭우를 이겨내긴 버거웠다. 고랭지 배추 주산지인 강원 태백의 8월 날씨가 30℃를 오르내렸다. 이는 수도권의 날씨와 비슷한 수준. 고랭지 배추 생육이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농산물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다.

병해충도 문제다.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은 ‘국내 농식품 2030 7대 미래이슈’ 중 여섯 번째로 ‘기후변화 대응 식물 병해충 관리’를 꼽았다. 그만큼 기후변화가 병해충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 농기평은 “기후변화에 따라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면적 확대로 외래 병해충의 정착 가능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또한 돌발해충의 지속적인 확산과 기타 병해충의 일시 급증 등으로 인해 경제작물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국내 병해충으로 인해 연간 5000억원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적시했다.

특히 올해 벼멸구 피해가 급증한 것 역시 폭염이 원인이다. 9월까지 고온이 지속되면서 전북과 전남, 경남 등에서 벼멸구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정한 벼멸구 발생면적은 3만4000ha다. 이종희 국립식량과학원 논이용작물과장은 “기온이 높아지면서 벼멸구 부화속도가 빨라졌고, 올해 같은 경우 예년보다 빠른 8월 말쯤부터 벼멸구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생긴 예상치 못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 등 산림 위기농업용수 공급 시설도 피해 

산림도 예외는 아니다. 소나무재선충병과 참나무시들음병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제주지역에선 아열대 외래해충인 ‘노랑알락하늘소’가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다. 김민중 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사는 “선박을 통해서 제주지역에 유입된 것으로 파악되는 노랑알락하늘소가 정착할 수 있었던 건 제주지역 기후가 노랑알락하늘소가 살던 아열대 지역의 기후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며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농업기반시설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환경연구원 국가기후위기적응정보포털도 농업분야 기후위기 영향의 하나로 ‘집중호우 등 이상기상으로 수리시설 등 농업기반시설의 피해급증’을 지적했다. 올해도 극한 호우로 농업기반시설이 무너지거나, 이로 인해 농경지가 침수되는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맹승진 한국농공학회장(충북대 교수)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수리시설물 특히 저수지의 경우 87% 정도가 50년 이상된 노후 저수지로, 이런 저수지가 시공될 당시 기후와 지금의 기후는 많이 변화됐다”며 “현재의 기후변화 또는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에 대응해 물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식량 생산량 감소 추세가파른 인구 증가도 우려 키워 

이런 기후변화가 초래하고 있는 농어업 상황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현상이다. 따라서 세계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식량 공급에 빨간불이 켜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2022년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도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세계 곡물 교역량 점유율은 옥수수 14%, 밀 9%, 보리 10%, 해바라기유 43%이며, 러시아는 밀 20%, 보리 14%, 해바라기유 20%다. 이들 국가의 곡물 수출이 중단되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오름세다.

세계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1987년 7월 11일은 UN(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인구의 날’. 세계 인구 50억명을 돌파한 날이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2023년 11월 15일,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넘었다. 2058년엔 세계 인구가 100억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러-우 전쟁, 세계 인구 증가 등이 겹치면서 식량부족 현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곡물 수입의존도 높은 우리나라도 식량안보 중요성 인식 시급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9.3%다.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2.3%로 더 낮다. 나머지 77.7%의 곡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국제 곡물시장이 우리나라 먹거리 시장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세계식량안보지수(GFSI)만 보더라도 2022년 우리나라는 113개국 중 39위다. 전년 32위보다 떨어졌으며,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우리나라도 식량안보에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태평 농어업위 위원장은 “우리나라도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화해야 한다”면서 “사과 생산지가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올라가고, 과수가 열과와 같은 피해를 보는 이런 일들은 모두 기후변화에 의한 것으로, 기후변화에 맞는 작부체계를 연구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기후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남재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연구교수(전 기상청장)
“식량은 없으면 굶어야기후변화 위기 대비 시급”

생산량 줄고 병해충 늘어
곡물 자급률 22% 수준 
수출 중단 땐 가격 폭등할 것

“일반 물품이 부족하면 밤을 새워서 생산하면 되지만 식량은 없으면 굶어야 합니다. 기후변화가 이런 위기를 가져올 수 있죠. 그래서 더욱 신경써야 해요.”

남재철 서울대 교수의 전언이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기상청장을 역임한 그는 최근 온난화로 인해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식량 생산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래서 식량위기에 대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책, ‘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전쟁’(21세기 북스)을 발간하며, 기후변화 시대의 식량안보를 강조하고 있는 남 교수. 최근 그를 서울대 내 국가농림기상센터에서 만났다.

-우리나라 기후변화 징후는.

“지난 100년간 평균 기온은 1.8℃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약 1.1℃ 오른 것과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깝다. 그만큼 온난화가 됐다는 의미다. 1900년대에 한강 결빙일수가 80일이었는데, 2000년대에는 15일로 줄었고, 2000년 이후 2006년과 2019년, 2021년엔 결빙이 관측되지 않았다. 강수량도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척도인데, 1912년부터 1941년까지의 30년과 1988년부터 2017년까지의 30년을 비교했을 때 연 강수량은 약 124㎜가 증가했다. 이때 강수일수는 늘지 않았다. 이는 극한 호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농업은 기후에 민감하다. 그렇다보니 농작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병해충이 증가하고 있다. 병해충이 증가하니 비료값과 농약값이 늘어난다. 경영비가 상승하고, 농가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기후변화는 작물 재배 적지도 바꾼다. 특히 과수는 기온이 1℃ 오르면 재배 적지가 80㎞ 북상하고, 해발고도는 154m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에서 키우던 사과가 강원 양구에서도 수확한다. 아열대 작물 재배도 확대되고 있다. 제주뿐만 아니라 남해안에서도 용과나 망고와 같은 아열대 작물이 재배된다.“

-왜 식량위기에 대비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서 굶는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 국민 중 약 6%인 300만명의 저소득층을 생각해야 한다. 이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식품을 사는데 사용한다. 그만큼 엥겔지수가 높다. 우리나라는 식량의 49%, 곡물의 22%만 자급한다. 이 외엔 수입을 해왔다. 기후변화 시기에 앞으로도 수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묻는다면 긍정적이진 않다. 가뭄과 홍수 등으로 생산량이 줄면 식량 수출국들이 수출 중단을 할 가능성이 있으며, 곡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는 국제 곡물가격 폭등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를 보여주는 예는.

“‘아랍의 봄’을 보자.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해 아랍으로 퍼진 반정부 시위운동인데, 그 촉발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가뭄이었다. 밀 생산량이 15% 이상 줄어드니 수출을 중단했고, 이로 인해 밀 가격이 폭등했다. 시민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면서 시위가 시작됐고, 이런 움직임이 이집트와 시리아 등에서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폭염 등 기후변화가 불러온 식량 부족이 나비효과가 됐다고 표현한다. 식량위기에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대통령 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공동기획>

출처: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