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남사화훼단지 ‘습설 날벼락’
[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하우스 하중 못 견디고 무너져
400여 농가 중 절반 가량 피해
겨울철·동시다발 피해 복구 애로
시설 파손에 작물 피해까지 더해
경제활동 중단돼 생계 ‘위기’ 기로
특별재난지역 지정 등 특단책 요구
폐기물 처리방안 마련도 시급
“117년 만의 11월 폭설이라면서요?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생산비는 계속 오르는 반면 꽃 소비는 역대 최저 수준이고, 수입 꽃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폭설 피해까지 겹치니, 이제는 정말 막막하기만 합니다.”
11월 29일 찾은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이 지역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화훼단지 중 하나로, 27일부터 28일까지 쏟아진 폭설로 시설하우스가 무너지는 피해가 속출하며 하루아침에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이틀 동안 용인시의 평균 적설량은 47.5㎝로, 최고 적설량을 기록했다. 물기를 머금은 ‘습설’로 인해 적설하중을 견디지 못한 하우스들이 무너지면서 재배 중인 꽃(식물)들도 함께 피해를 입는 2차 피해로 이어졌는데, 당장 뾰족한 대책이 없는 농가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남사읍에서 호접란을 재배하는 여동규 씨는 자신의 농장 하우스 10여 동 중 절반 이상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다. 한숨을 쉬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던 그는 “‘악몽’과도 같은 밤이었다”고 말했다. “27일 밤부터 눈이 거세게 내려 28일 새벽에 비닐하우스 내부 난방을 가동했어요. 새벽 내내 난방을 했지만, 습기가 많은 눈이 얼면서 무게를 견디지 못해 28일 동이 틀 무렵 비닐하우스가 폭삭 내려앉았습니다.” 여 씨는 “시설 피해도 문제지만, 출하 예정인 호접란의 상품 가치까지 떨어져 피해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남사화훼작목반 부회장인 한태순 씨 역시 하우스 5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는 자칫 인명사고까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딸 아이가 새벽에 하우스 작업을 돕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큰일 날 뻔 했어요. 인명사고가 나지 않은 게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한 씨는 “이 일대의 화훼 농가 400여 곳 중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 같다. 완전 파손이냐, 부분 파손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라 다른 농가의 복구를 도와줄 여력조차 없는 실정이다. 말 그대로 ‘천재지변’으로 아무도 손쓸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대 작목반 총무인 농가 A씨는 “농장 하우스 입구가 무너져 내부 피해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며 “작목반 회원들을 중심으로 전화를 돌려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연말과 신년 수요를 기대하며 출하를 준비하던 농가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피해 규모를 가늠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설 피해만으로도 직접적인 손실이 막대한데, 여기에 작물 피해 등 2차 피해와 시설 파손으로 인한 휴업 피해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더욱 복잡해진다. 피해 신청 접수 이후 피해액 산정과 보상 범위가 논의될 예정이지만, 농가들의 걱정이 계속되는 이유다.
여 씨는 “하우스 시설은 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완파되지 않는 한 보상액은 턱없이 적다. 하우스 골격은 한 번 뒤틀리면 사실상 모두 뜯어내 다시 설치해야 하지만, 피해 산정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재배 중인 호접란이나 관엽식물 등의 피해가 상당한데, 농작물재해보험은 화훼 분야에서 백합, 국화, 장미, 카네이션 4개 품목만 보장하고 있어 호접란 같은 작물이 제외되는 점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우스 복구에 약 1년, 묘목 구입 후 출하까지는 약 2년 이상 걸린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연매출의 3개년 치를 보상해야 농가들이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농가가 회생과 포기의 갈림길에 설 것이다. 이번 피해가 이상기후로 빚어진 만큼 국가 차원에서 긴급 사태로 보고 특별재난지역 지정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피해 복구 비용 중 지방비 부담액의 일부를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으며, 피해 주민에게는 건강보험료, 공공요금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화훼 농가 B씨도 “이번 폭설 피해는 시설 기반을 무너뜨리는 직접적인 피해여서 농가들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걸릴 것이다. 특히 고령이거나 경영 압박을 겪고 있는 이들은 화훼 농사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며 “중앙정부가 특별재난지역 지정 등을 통해 피해 지원을 확대해 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시설 파손으로 경제활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이 기간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실적인 문제도 상당한 고민이다.
한태순 씨는 “시설이 파손되면서 경제활동이 중단돼 생계 유지가 막막한 상황에 놓인 농가들이 많다. 시설 복구도 한겨울에는 어렵고 날이 풀리는 2~3월이 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융자나 이자 상환 부담을 완화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또 일대 시설들이 파손되면서 폐기물 처리에도 큰 어려움이 있다. 이 문제는 농가 개인이 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정부 차원의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이곳에서 만난 유석룡 한국화훼농협 조합장은 “생산비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데 꽃 소비는 줄어드는 화훼 산업 여건에서 이번과 같은 이상기후 피해까지 더해져 농가 어려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안타깝고 마음이 무겁다”며 “이번 폭설 피해는 용인 지역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평택과 안성, 음성 등 다른 화훼 산지에서도 피해가 접수되고 있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출처: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2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