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26일 경남 진주시 경남도청 서부청사 앞에서 열린 ‘농민권리 침해! 농정쿠데타! 졸속농정 즉각 중단! 벼 재배면적 `강제’ 조정제 폐기 촉구 기자회견’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경남연합 회원들이 농림축산식품부가 강행하고 있는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의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벼 재배면적 8만ha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처음 드러난 건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였다. 정부 회의에서 이 계획이 언급된 걸 포착한 전종덕(진보당)·임미애(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그 부당함을 지적하며 심각하게 우려를 표한 것이다.
하지만 계획은 재고되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국정감사 직후인 지난해 11월부터 쌀산업구조개혁협의체 회의에서 8만ha 감축을 공론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12월 12일 정책을 확정 발표하기에 이른다.
농식품부의 계획은 충격적이었다. 지역별 재배면적에 비례해 각 지자체에 감축 목표 면적을 할당하고 모든 쌀농가에 ‘재배면적 감축 통지서’를 발송하겠다는 것이었다. 통지서를 받고도 농가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책사업 불이익과 함께 특히 기본직불금 차등 지급까지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농민들이 분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자체 정책설명회 무산 투쟁과 규탄 집회가 속속 이어졌다. 현장의 반발 기류가 심상치 않자 결국 농식품부도 한발 물러섰다. 농가별 통지서 발송 계획을 철회하고 ‘지자체 자율 감축’으로 방법을 선회하겠다는 것이었다. 기본직불금 차등 지급도 올해는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통지서’라는 자극적 도구가 사라졌을 뿐 정책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8만ha라는 감축 목표는 건재하고 지자체별로 할당된 목표 면적도 그대로다. 말은 자율 감축이라지만 지자체가 농민들을 회유하거나 강압해 할당 목표를 채워야 하는 구조다. 미이행 농가가 정책사업에서 배제되는 페널티도 여전하며 기본직불금 차등 역시 내년부터 도입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농민들도 지자체 공무원들도 계속해서 농식품부를 향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농민들이 이 정책에 반발하는 이유는 정부의 강제조치에 단순히 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다. 시각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 판단할 순 있겠지만 지금의 쌀값 문제엔 비효율적 수급정책, 맹목적 의무수입량 유지 등 정부의 책임 소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번 정책은 정부의 책임을 ‘0’으로 조율한 채 농민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또한 1차원적으로 벼 재배면적 감축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대체작목 수급 불안이나 식량자급률 하락, 경작지 소실 등 정책의 결과로 파생될 문제들에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에 없이 강압적인 추진 방식도 논란거리다. 농민의 권리를 통제하고 소득에 영향을 주는 정책, 지자체 공무원을 농민들과의 전선으로 밀어넣어 총알받이 삼는 정책을 결정하면서 현장과의 논의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농식품부 스스로는 농민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말하지만, 정책 발표 후 쏟아지고 있는 농민들의 원성을 들어보면 농식품부가 ‘선택한’ 일부 농민단체의 대표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최근 농식품부의 정책 결정은 대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벼 재배면적 감축, 농업수입안정보험 도입, 농지규제 완화, 청년농 육성자금 개편 등 농민의 삶을 직접적으로 옥죄는 정책들을 농식품부가 일방적으로 결정·발표하고 있다.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장관의 공식 발언과 함께다.
‘불통’의 극단으로 치닫다 계엄 사태까지 일으킨 대통령의 국정 기조가 내란 이후의 국면에서까지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농식품부의 굵직한 농업정책들이 하나같이 현장의 이해와 협조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 가운데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이 영농철 진입을 맞아 초미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쌀 재배면적 감축, 왜 문제인가’ 토론회는 이 정책을 둘러싼 농민들과 농식품부의 입장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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